김태

김태규

정치검사와 민주검사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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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지난 8월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행정안전부 중대범죄수사청 임용 설명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김태규 | 이슈부국장 2012년 4월의 어느 날 저녁,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동네의 한 중식당에서 ㄱ검사를 보기로 했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던 검사였고, 수사를 뭉개려는 윗선의 압박을 알리겠다는 제보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 시각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중식당의 지배인이 '전화를 받아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ㄱ검사였다. 지금 움직이면 본인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잘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배인께 미안해서 게살볶음밥을 주문해 맛있게 먹고 나왔다. '기자님. 그거 오프(더 레코드)로 말한 건데 그렇게 기사를 쓰시면 어떡해요?' 이듬해에는 같은 사건을 수사했던 ㄴ검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잔뜩 겁먹은 표정이 목소리로 느껴졌다. 권력형 비리 수사를 검찰 수뇌부가 어떻게 방해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던 검사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은 정권에 불리한 사건을 노골적으로 대놓고 덮으려 했고, 당시 한겨레 법조팀은 검사들을 상대로 '엠비 검찰'의 후안무치 행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1년 가까이 취재했다. 검사 여러명의 증언이 있었고 그렇게 2013년에 엮어낸 기획기사가 '정치검사의 민낯' 시리즈였다. 이 기사의 핵심 팩트를 증언했던 ㄴ검사는 이미 지방으로 날아간 상태였지만 추가 보복이 두려운 것 같았다. 인간적으로 미안했지만 사실은 바로잡아야 했다. '처음엔 오프라고 하셨지만 나중엔 기사 쓰라고 하셨어요. 저는 오프 약속을 깨면서 기사 쓰는 파렴치한 기자가 아닙니다.' 법조 기자로 일하며 적지 않은 검사들을 만났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권에 부역하며 있는 죄를 없애고 없는 죄를 만들던 자가 '정치검사'였고, 내부 고발을 위해 한겨레를 찾던 이가 '민주검사'였다. 정치검사는 조졌고('조지다'는 '호되게 때리다'라는 뜻의 표준말이다), 민주검사에게선 도움을 받아 기사를 썼다. 몇년 전에는 검찰에서 퇴직하고 기업에서 일하던 ㄷ변호사가 갑자기 휴일에 전화해 면담을 청했다. 평일에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더니 서류봉투를 하나 건넸다. 본인이 소속된 기업이 형사 사건에 연루됐는데, 이를 무마하려고 정권 실세를 통해 검찰과 법원에 로비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진실임이 명백한 내부 고발이었지만 취재원을 보호하면서 기사를 쓸 방도가 없어 보도하지는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특권층의 부패에 맞서는 시민적 덕성을 '비르투'라고 했다. 민주검사들은 비르투를 발휘해 한겨레의 문을 두드렸다.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입을 연 검사도 많았지만, 내부 고발을 결심하고도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까 봐 멈칫했던 ㄱ검사, 외압을 털어놓고 정작 보도가 되자 보복을 두려워했던 ㄴ검사의 인간적 고뇌를 이해한다. 회사의 치부를 알게 된 ㄷ변호사는 휴일에 기자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소시민적인 비르투를 발휘했던 이들은 '용감한 내부 고발자'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불의를 바로잡으려 조용히 동분서주했다. 다음달 2일이면 검찰청이 문을 닫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으로 수사권까지 손에 넣은 지 72년 만이다. 윤석열을 필두로 한 정치검사가 정권을 장악하고 민주주의까지 말살하려다가 실패한 이후 필연적으로 마주한 결과다. 형사사법 체계 대전환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검찰의 부패 수사 기능을 넘겨받아야 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의 수장은 아직 공석이다. 검사장 출신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가 과거 검찰 수사권 폐지 입법에 반대했다는 이유 등으로 여권 일각의 비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윤석열 장모의 모해위증 사건 재수사를 결정했던 전력을 들어 손쉽게 '친윤 검사'로 규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 후보자는 '윤석열 검찰총장' 재임 및 퇴임 이후 어수선한 시절에 정진웅 검사와 이광철 민정비서관에 대한 정치적 기소 결정에도 반대했다고 한다. 용감한 민주검사까지는 아니었어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 셈이다.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인물'이라며 법조계 평가도 호의적이다. 중수청을 안착시킬 초대 청장으로 흠결은 없어 보이는데 인사청문 절차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확실한 우리 편'을 찾는 게 아니라면, 국회에서 청문회를 통해 '중수청의 검찰화' 우려 등을 따져보면 된다. 편협함은 개혁의 적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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