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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의 나사를 돌리다 인생을 풀다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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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영화 '토이 스토리'(1995년)에서 내 인생과 가장 닮은 장난감은 괴짜 시드가 개조한 돌연변이들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명석 | 문화비평가 가을의 토요일엔 차가 막힌다. 모두 어딘가 즐거운 곳을 찾아가나 보다. 하지만 원고 마감에 쫓긴 나와 친구는 작업하기 좋은 공공시설을 찾아갔다. 그런데 여기도 수상하다. 손그림 입간판에 왁자한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얼떨떨해 있던 것도 잠시,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행사에 현장 등록을 하고 뻥튀기 접시에 담긴 유부초밥을 먹었다. 공익 활동 단체들의 축제였다. 고장 난 우산을 수리하고, 안 입는 옷을 가져와 교환하고, 레고 블록으로 휠체어 경사길을 만들고, 버려질 컴퓨터 부속으로 장난감 키캡을 만드는 등 의미와 재미를 함께 담은 체험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드라이버를 들고 장난감 무더기 앞에 앉았다. 매년 폐기되는 장난감류가 240만톤이나 된다는데, 이들을 재질과 색상별로 분류해 재활용하거나 재생 플라스틱으로 부활시킨다나. 의미를 떠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차양막을 주문해 직접 설치했던 게 생각났다. 얄팍한 설명서 한장만 보고 낑낑대며 철봉과 부속과 천을 조립하는데, 힘도 들었지만 정신적인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품 하나를 엉뚱한 데 붙이거나 순서만 틀려도 모든 걸 뜯어서 새로 조립해야 하니까. 하지만 분해하는 일엔 그런 걱정이 없다. 손도 뇌도 느슨해지니 이런저런 상념이 실려 왔다. 살다 보면 장난감이나 가전제품만이 아니라 인생도 분해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20~30년 만에 내게 연락해와 '살아 있냐' 물어보는 친구들이 그런 상황이다. 자식들은 결혼해 떠났고, 직장도 슬슬 정리해야 하고, 배우자와는 '졸혼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멀어지기로 합의했다. 이제 혼자 고양이나 식물을 키우고, 여행도 다니고, 이런저런 취미도 즐겨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경제 활동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고, 알바인지 프리랜서인지 모를 일도 찾아봐야 한다. 과연 이렇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아차, 그러고 보니 평생 이렇게 살아온 녀석이 있었는데. 그래서 내게 연락을 해오는 거다. 나는 농담 반 냉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고객님께서 평생 사용해오신 패키지 인생을 분해해 재조립해보고 싶다는 거죠?' 우리가 젊은 시절 독립할 때, 그들은 직장, 결혼, 육아, 아파트, 자동차, 그리고 그에 꼭 붙어 있는 관혼상제와 술자리와 사회적 관계를 하나의 패키지로 선택했다. 그걸 다른 단어로 바꿔 말하면 '정상성'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가이드 없이 혼자 배낭을 메고 매번 모든 경로를 스스로 선택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당연히 전자가 훨씬 다수이고 유리하다. 후자는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상하게 요동쳤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고, 고정된 직장에 머무르지 않고, 술자리를 피하고, 직업보다 덕질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런 자식들을 못마땅해하던 부모들도 막상 인생 후반, 제2의 독립을 꾀하게 되자 자신에게도 비슷한 삶이 눈앞에 와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너는 언제부터 알았어? 어떻게 확신했어?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친구들이 물어본다. 마치 내가 무소불위의 정상성이 붕괴할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했듯이. '몰라. 나는 이기적이라 나밖에 몰라.' 내가 그런 정상성의 세상을 견딜 수 없다는 것만 알았고, 약삭빠르게 나한테 필요한 것만 골라 인생을 조립했을 뿐이다. '토이 스토리'의 수많은 장난감 중에서, 시드라는 괴짜 아이가 프랑켄슈타인처럼 여러 장난감을 자르고 붙여 만든 돌연변이 인형 같은 삶이다. 다행히 살아남았고 그런 삶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 역시 매끈한 인형을 질투하고 부러워할 때가 없지 않다. 영화 '토이 스토리'(1995년)에서 내 인생과 가장 닮은 장난감은 괴짜 시드가 개조한 돌연변이들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분해하는 일엔 소질이 있는지, 친구보다 훨씬 빨리 작업을 마쳤다. 심심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여기 실려 온 장난감들이 너무 깨끗하고 멀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주기보단 새 장난감을 사주는 게 편하겠지. 정상성이 붕괴되면 더 나은 정상성으로 교체해준다. 멋진 일이다. 장난감은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럴 수 없다. 몸도 마음도 계속 고치고 재조립해 써야 한다. 그러니 미리미리 분해하고 고치는 연습을 해두면 좋을 거다. 장난감 자동차든, 우산이든, 컴퓨터든, 인간관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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