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직격인터뷰] 오디세이가 한국인에 묻는 질문 '나는 돌아갈 곳 있나?'

[문소영의 직격인터뷰] 오디세이가 한국인에 묻는 질문 '나는 돌아갈 곳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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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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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지난 6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흥행은 서점가로 번져 호메로스의 번역서와 관련 인문서 열풍이 불고 있다. 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제목에 '오디세이'가 들어간 서적의 지난달 판매량이 전월 대비 10배, 전년 동기 대비 31배나 늘었다. 무엇 때문에 21세기 AI 시대 초입의 한국 대중은 3000년 전 서양 고전에 매료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원전 오디세이아를 완역한 김기영 박사를 만났다. 김기영 서양고전학자 에게 원전과 영화를 묻다 문소영 논설위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 오디세이'가 지난 6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흥행은 서점가로 번져 호메로스 의 번역서와 관련 인문서 열풍이 불고 있다. 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제목에 ' 오디세이'가 들어간 서적의 지난달 판매량이 전월 대비 10배, 전년 동기 대비 31배나 늘었다. 무엇 때문에 21세기 AI 시대 초입의 한국 대중은 3000년 전 서양 고전에 매료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원전 오디세이아를 완역한 김기영 박사를 만났다. 원전도 승자·패자 모두 전쟁 고통 영화는 그리스 비극 색채 강해 희극성·복합성 사라진 건 아쉬워 최애 조연은 돼지치기와 늙은 개 고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오뒷세이아』를 번역한 서양고전학자 김기영 박사. 문소영 기자 현재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오디세이아는 모두 다섯 종이다. 고전 원전 번역의 선구자인 고 천병희 교수의 번역을 시작으로 26년 뒤 김기영 박사가 민음사판 『오뒷세이아』 를 냈고, 그 뒤 세 종이 더 나왔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전공한 김 박사에 따르면 훗날 셰익스피어 같은 서양 비극 문학은 호메로스 서사시와 신화를 바탕으로 한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에 뿌리가 닿는다. 놀런의 영화 '오디세이' 에도 그리스 비극의 요소가 강하게 들어있다. 오디세우스는 다면적 인간 3000년 가까이 된 서사시가 지금 한국 대중에게도 통하는 이유는. '고전의 힘이다.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해서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가 되묻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집이란 무엇인가, 20년 만에 돌아온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타카로 돌아가는 중이다. 오디세이아는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 김 박사는 고전과 요즘 세상 사이의 접점도 언급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잦아지다 보니 승자의 무공과 영광뿐 아니라 패자의 고통까지 동시에 바라본 오디세이아 서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제8권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부하와 배를 잃고 나그네가 된 오디세우스가 알키노오스 왕의 궁전에 머무는데, 궁정 가인이 트로이의 목마 노래를 부르자 눈물을 흘린다. 놀랍게도 호메로스는 그 눈물을 트로이 여인의 눈물에 비유한다. 여인은 전사한 남편을 안고 통곡하는데, 그녀를 노예로 끌고 가려는 그리스 병사가 창으로 등을 찌른다. 이런 여인의 눈물에 정복자 오디세우스의 눈물을 빗댄 것이다. 영광의 이면에 도사린 패자와 승자의 고통이 동시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이런 직유가 중요해 번역에서도 최대한 살리려 했다. 다만 영화가 전쟁의 상처를 극대화한 반면 원전에서는 영광과 고통이 복합적이다. ' 그럼 영화 '오디세이'는 2026년의 한국인에게 무슨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것일까.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카로 귀환하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나의 이타카'는 어디인가라고 곱씹게 하는 것이다. 뭔가 허한 심정의 현대인들이 영화를 보며 '나는 돌아갈 곳이 있나'고 스스로 묻는다. 또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라는 보편 정서도 들어 있는데 귀환과 재회는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점이 가족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 영화에서 원전을 제대로 살린 부분과, 원전과 크게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원전의 비선형적 서사를 제대로 살렸다. 오디세이아는 사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원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알키노오스 왕의 궁전에서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한다. 영화에서는 그 대목을,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섬에서 되살아난 기억으로 바꾸었다. 말하기가 회상으로 대체된 것이다. 영화와 원전이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첫째, 원전에서 신들은 실제로 힘을 행사하는 실체인데, 영화의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양심이나 내면에 가깝다. 둘째, 원전의 인물들은 놀라울 만큼 명랑하고 육체적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다 수다 떨고 조롱하고 몸싸움을 한다. 심지어 외눈 거인 에피소드에도 말장난이 등장한다. 영화에는 이런 희극성이 거의 사라졌다. 셋째, 놀런의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파괴한 문명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트로이 목마는 그 집약체다. 그러나 원전에서 목마는 순전히 그의 지략이 이룬 성취로 남는다. 넷째, 영화에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의 요소를 삽입했다. 그래서 나는 놀런이 통상적인 오디세이아 이해를 넘어 전쟁과 죄, 기억과 트라우마를 다룬 한 편의 그리스 비극으로 각색했다고 본다. ' '외눈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오디세우스', 16세기 이탈리아 천장화. 오디세우스는 어떤 인간인가. 요약본이 아닌 원전을 읽어야 할 이유와도 연결되나. '한마디로 다면적인 인간이다. 오디세이아 첫 행에서 그에 대한 수식어 폴리트로포스를 나는 '응변에 능한'으로 옮겼다. 이 단어를 능동으로 읽으면 정체를 여러 방향으로 '돌리는' 사람이고, 수동으로 읽으면 이리저리 '돌려진' 방랑자다. 한 단어 안에 주체와 피해자가 같이 있다. 아킬레우스가 힘과 직진의 영웅이라면 오디세우스는 꾀와 우회의 영웅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외눈거인을 말로 조롱하는 대신 화살을 쏘는 장면을 보고 '언변의 영웅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이런 것이 원전을 읽는 이유다. 줄거리 요약은 사건을 알려주지만 문학을 경험하게 하지는 못한다. 번역은 곧 해석이다. 폴리트로포스 하나에도 여러 뜻이 겹친다. 번역서를 해석의 실험으로 읽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굳이 아가멤논 비극 나온 이유 영화 '오디세이'의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 영화에서 강렬한 투구로 '신 스틸러' 역할을 했던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귀향하자마자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다. 남편이 승전을 위한 제물로 어린 딸을 바친 데 대한 복수로 그를 죽였다고 나오는데 원전에선 어떤가. '원전에서 아가멤논의 귀향은 오디세우스의 귀향과 반대되는 거울 이야기로 등장한다. 원전에서 아가멤논은 자신이 떠난 동안 불륜을 저지른 아내의 정부에게 살해된 반면, 오디세우스는 정절을 지킨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한다. 반면에 영화는 아가멤논의 아내가 딸의 복수를 위해 남편을 직접 죽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호메로스의 원전이 아니라 아이스킬로스란 시인이 쓴 비극 '아가멤논'을 따른 것이다. 이 비극에서 그녀는 집을 지배하고 남성을 죽이며 정치적 언어로 자신의 정의를 당당하게 주장한다. 가부장 질서를 정면으로 전복하는 캐릭터다. ' 페넬로페는 남편 닮은 지략가 영화 속 페넬로페. 영화에서는 페넬로페가 상당히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현대적 재해석인가. '놀런이 수동적 여성 페넬로페를 능동적으로 바꿨다고 말하는 건 원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페넬로페는 이미 대단히 능동적이다. 다만 그 능동성이 간접적이고 전략적이며 가정 안쪽에서 작동할 뿐이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재혼을 미루겠다 선언하고는 낮에는 짜고 밤에는 풀어 3년을 번다. 막상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는데도 진짜인지 의심해서 시험한다. 둘만 아는 혼인 침대를 밖으로 옮기라고 지시하고, 이에 오디세우스가 그 침대는 살아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 옮길 수 없다고 화를 낸다. 그제야 페넬로페는 진짜 남편임을 확신한다. 이처럼 이들은 지략에 있어 막상막하인 부부다. 놀런은 원전에 있던 페넬로페의 지략과 자율성을 현대의 정치적·감정적 언어로 확대 번역한 것이다. ' 화가 워터하우스 그림의 페넬로페. 원전에서 현대 독자가 새롭게 볼 만한 조연을 꼽는다면. '오디세우스 궁정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다. 오늘의 독자가 오디세이아를 영웅과 왕의 시선만이 아니라 노예와 하인, 주변부 인물의 시선에서도 읽는다면 새로 발견되는 인물이다. 그는 거지로 위장한 오디세우스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다. 좋은 고기를 내주고 신들에게 제 몫을 바친다. 나는 그가 '환대'란 개념을 가장 순수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라 말하고 싶다.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하인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판단이 있는, 일하는 인간이다. 숨은 윤리적 영웅이다. 늙은 개 아르고스도 언급하고 싶은 조연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다가 숨을 거둔다. 그런데 시인은 이때 『일리아스』에서 용사가 전사할 때 쓰는 표현을 그대로 쓴다. '검은 죽음의 운명이 아르고스를 잡았구나. ' 짠하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는, 호메로스다운 대목이다. ' ◆김기영=서양고전학자. 연세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 인문대 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소포클레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서울대·연세대 등에서 강의해 왔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 등 다수의 그리스 비극을 번역했다. 『신화에서 비극으로』 『그리스 비극의 영웅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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