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최근에는 청소년과 청년의 자해와 자살도 늘고 있다. 우리말에는 '배고파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처럼 '죽겠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 임세원 교수는 저서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죽고 싶다'는 말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뜻보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는 호소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 깊은 절망의 순간, 나를 살게 하는 작은 이유 하나는 힘든 시간을 버텨내는 강력한 구명조끼가 된다.
진심을 담은 '니 땜시 살어야'라는 한마디가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 가운데 야구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야구 경기를 보며 좋아하는 선수가 안타를 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영국 축구계는 스포츠가 가진 이런 힘을 자살 예방에 활용하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축구를 이야기하듯 마음의 어려움도 이야기하자'는 활동을 펼쳤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데클런 라이스(아스날)도 자살 예방 단체의 홍보대사로 나섰다. 지난해에는 잉글랜드 최상위 축구리그 (EPL) 20개 구단이 자살예방단체와 함께 '자살에 맞서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홈경기 때 팬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스포츠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삶의 위기에 처한 지역민에게 직접 손을 내민 훌륭한 사례다.
광주에서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다. 군사독재 시절, 지역민들은 무등경기장에 모여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며 억눌린 마음을 달랬다. 지금은 부모와 자녀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처음 만난 사람과 함께 응원가를 부른다. 젊은 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역민의 큰 사랑을 받는 KIA 타이거즈라면 야구의 힘을 생명을 지키는 일로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김도영 선수가 홈런을 칠 때마다 구단과 후원사가 기금을 보태고, 원하는 팬들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정성이 지역의 자살예방 상담과 정신건강 위기지원에 쓰인다면, 야구장의 뜨거운 함성은 누군가를 살리는 숨결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다. 다음 야구 경기를 함께 보자고 약속하는 것, 밥 한 끼 먹자고 손을 내미는 것, 힘들다는 말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9월 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다. 이번에는 광주에서 서로에게 이 말을 건네보자. '니 땜시 살어야.' 그리고, 나 때문에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려보자.
/김성완 shalomp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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