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사랑과 배짱으로 이룬 둘만의 파라다이스

[기억할 오늘] 사랑과 배짱으로 이룬 둘만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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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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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거트루드 스타인과 앨리스 토클라스 미국인 예술가 앨리스 토클라스(Alice B. Toklas, 1877~1967)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1906) 이듬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 즉 당시 파리의 전위적 예술가들의 삶을 동경해온 터였다. 그는 파리 도착 다음 날(9월 8일), 자신에게 파리 이야기를 들려준 한 부부의 집에 인사차 들렀고, 거기서 잃어버린 세대의 '대모'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을 만난다. 둘의 세기적 사랑이 그렇게 시작됐다. 스타인은 토클라스의 시점을 빌려 쓴 '앨리스 토클라스 자서전(1933)'에 첫 만남의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내 평생 딱 세 번 천재를 만났는데, 매번 그 순간 내 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천재들은) 거트루드 스타인과 파블로 피카소,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였다.' 1910년 동거를 시작한 둘은 스타인이 숨질 때까지 사실혼 관계의 레즈비언 부부로 살았다. 토클라스는 스타인의 원고 작업을 거들며 요리 등 집안일을 도맡았다. 피카소와 헤밍웨이, 마티스, 피츠제럴드 등 스타인의 살롱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예술가들의 뒤치다꺼리도 주로 그의 몫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둘은 서로를 '와이피(wifey)'나 '러비(lovey)' 등 애칭으로 불렀다. 예술가와 지식인 집단은 다소 관대했다지만, 자유분방하던 당시의 파리에서도 공개적인 동성애자 커플은 드물었다. 둘 역시 파리 예술계라는 특수한 환경 덕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을 뿐,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사랑과 배짱으로 자신들의 파라다이스를 구축했다. 스타인은 토클라스에게 저작권과 소장품 등에 대한 종신 소유권을 명시한 유언장을 남겼다. 하지만 스타인의 조카 등 유족들은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상속권을 요구하다 1961년 토클라스가 집을 비운 사이 '관리 부실'을 명분 삼아 소장품 대부분을 가져갔다. 토클라스는 가난과 질병으로 힘겨운 말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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