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문자가 발명되고 쓰기와 함께 읽기의 방식도 시대마다 달랐다. 읽기의 역사를 다룬 책에 따르면, 처음에는 대체로 소리 내어 글을 낭독했으나, 중세 대학이 출현한 이후 마음속으로 읽는 묵독이 널리 퍼졌다. 19세기 말 신문과 잡지가 번성하자 한번 읽고 마는 소비형 독서가 등장했고, 20세기 말 인터넷 시대에는 필요한 정보를 골라 읽는 검색형 읽기가 늘었다. 요즘에는 글을 대신하는 영상 콘텐츠와 인공지능의 검색·요약이 늘면서 읽기 능력이 퇴화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읽기가 생각과 마음을 기르는 중요한 정신 활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읽기는 다양한 뇌 영역을 활용하며, 독서 경험이 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룬드대학의 음성학자 미카엘 롤 교수는 국제학술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실린 논문에서 성인 1068명(쌍둥이 380명 포함)의 고해상도 뇌 영상과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읽기 능력이 시각, 청각, 그리고 음성과 의미를 연결하는 뇌 영역이 어울리는 데서 비롯함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실 읽기는 뇌과학에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능력이다. 쓰기와 읽기는 긴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발명품이기에, 뇌에는 읽기의 전용 영역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눈으로 점, 선, 모양으로 식별하는 문자를 음성으로 연결하고, 다시 음성을 의미와 연결하면서 읽기 과정이 이뤄진다. 이렇게 보면, 글을 배울 때 소리 내어 읽기는 문자와 음성을 연결하는 뇌 경로를 구축하는 훈련인 셈이다.
많은 뇌 영상과 데이터를 분석한 이번 연구에서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밝혀졌다. 특히, 읽기 능력과 관련한 뇌 영역의 구조 특성에 당연히 유전자의 영향이 크지만, 뇌 영역의 두께나 미세한 구조는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읽기 능력을 좌우하는 뇌 신경망도 운동으로 근력을 기르듯이 독서 경험으로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비영리 매체 '컨버세이션'에 쓴 글에서 자신이 만난 난독증 물리학자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는 시각과 청각을 연결하지 못해 문자를 보고도 음성으로 변환하지 못하는 난독증을 지녔지만, 충분한 읽기 능력을 갖춘 물리학자로 활동했다. 롤 교수는 많은 훈련과 경험으로 그의 뇌에서 문자의 시각 정보를 음성의 도움 없이 바로 의미와 연결하는 새로운 읽기 경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음성을 거치지 않고 문자를 의미와 직접 연결하는 뇌 경로를 강화하고, 때로는 문자를 수화 언어로 번역해 읽기 능력을 증진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촉각을 이용해 문자를 읽는데, 놀랍게도 어릴 때 시력을 잃은 경우에는 뇌의 시각 담당 영역이 활성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읽기는 감각 능력과 경험에 따라 다양한 뇌 경로를 활용한다. 저자는 읽기의 기회가 줄어든 요즘 시대에도 이 놀라운 뇌 신경망을 단련하는 일을 스스로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우리 뇌를 더욱 아름다운 형태로 빚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로 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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