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아파트 값이 한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에 새 정부의 규제 정책에 반응해 잠시 주춤하는가 싶던 서울 아파트 값이 다시 요동친다. 이에 맞서 정부 안팎에서 대책이 논의되자, 이번에는 매매가가 아니라 전월세가가 치솟기 시작한다. 매번 그랬듯이,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가격 폭등이 한강변으로 확대됐다가 수도권 신도시 전역으로 옮아가는 모양새다.
2000년대 이후 범민주당 정권(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은 매번 주거/부동산 문제에 발목이 걸려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이재명 정부는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척결하겠다", "부동산시장에 고여 있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가게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이런 기대는 한껏 고조됐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 과세의 칼을 꺼내들었다가, '똘똘한 한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상층 중간계급 사이에 새로운 부동산 과세 반대 동맹만 강화시켜주고 말았다. 그러면서 정작, 고가 주택에 정당하게 세금을 물린다는 원칙은 여전히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옥신각신 속에서 수도권의 애먼 무주택 임차 가구만 돌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가구 1주택'주의의 깃발을 휘날리는 정부는 "다주택자들의 집이 시장에 풀리면 그때 집을 사라"는 예언 외에 별다른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재명 정부 역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운명을 반복할 것만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다. 주거/부동산 문제로 인한 정권의 대실패는 정말로 범민주당 세력의 저주받은 숙명인가?
그렇다. 저주받은 숙명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범민주당 세력에게 내려진 저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주받은 대상은 범민주당 세력만이 아니라, 이들이 기득권을 누려온 정치 체제 전반이다. 바로, 소선거구제에 바탕을 둔 양당 독점 정치다.
양당 정치로는 해결될 길 없는 한국의 주거/부동산 문제
소선거구제-양당정치의 제도 조합은 한국의 주거/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은 불평등을 손보겠다고 호언장담하다 막상 집권하고 나서는 늘 불평등을 더욱 늘리기만 하는 것이고, 반대쪽인 국민의힘 계열은 집값을 계속 올리는 역사적 관성을 지속하기만 하는 것이다. 양대 정당 모두 한국 주거/부동산 문제의 기본 구조를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그럼 소선거구제-양당정치 체제는 도대체 왜 한국의 주거/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현재 한국의 주거/부동산 문제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계층이 존재한다. 이 다양한 계층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하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킬 정책을 조합해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한국의 부동산 계층 구조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논의가 있다. 그러나 선행 논의를 굳이 검토하지 않더라도, 상식 수준에서 누구든 여러 계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진정한 부동산 기득권층이 있다. 아마도 가장 직관적으로 와 닿는 수치는 종합부동산세 납부자 숫자일 것이다. 종부세 납부자는 2025년 전국 주택 소유자 1600여 만 명 중 3%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은 '쪽수'와 전혀 상관이 없다. 부동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주요 언론이 이들의 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들 아래에 여러 주택 보유자 계층이 있다. 가령 다주택자이지만 비수도권 거주자라 '똘똘한 한 채'와는 거리가 멀거나, 퇴직 후에 생계형 임대를 하는 고령자가 있다. 1주택자이지만 수도권에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고 실제로는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말 그대로 실거주 1주택자이지만 여러 이유로 주택담보대출에 의지하는 탓에 부동산 기득권층과는 계층 간 거리가 먼데도 집값 하락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다.
이 모두는 주거/부동산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과세가 쟁점이 될 때는 부동산 기득권층의 담론에 쉽게 호응해 삽시간에 동맹을 형성하곤 한다.
그 아래에는 무주택 세입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의 계층이 아니다. 가장 상층에는 소득 측면에서 상층 중간계급이지만 당장은 자가가 없는 젊은 고학력 중간계급이 있다. 이들은 당장이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할 여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무주택자들보다는 오히려 자가 보유자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 제도도 무주택자들의 계층 분화를 부추긴다. 서울이나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의 전세 세입자들은 주택 보유 계층과 무주택 계층 사이에서 계층 간 역학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독특한 존재다.
무주택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이들도 다양하다. 전월세가가 상승하면 곧바로 생계비 압박을 받고 직장에서 더 먼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가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부모로부터 상속받을 재산 없이 원룸 빌라나 오피스텔에서 출발해야 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 단칸방에 세들어 살며 당장 다음달 월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노숙자 신세가 되는 이들도 있다. 이들 역시 이해관계가 서로 같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은 있다. 모두 다 주거/부동산 문제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대략의 스케치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주거/부동산 계층 구조가 단순한 '산수'로 풀릴 문제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수학'이 동원되어야 할 문제다. 더구나 계층 간 세력 균형을 따지면, 더 난해해진다. 극소수인 부동산 기득권층 정도만 다른 계층을 압도할 힘을 지니고 있고, 나머지 계층 가운데에는 다른 계층보다 머릿수가 크게 많다든가 유별나게 조직되어 있다고 할 만한 집단이 없다. 자가 보유 가구와 무주택 가구만 나눠 봐도, 전국적으로는 55 대 45, 서울의 경우는 50 대 50로 비등비등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선구제-양당정치 체제에 길들여진 양대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 체제에서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모두 상대방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득표하는 거대 정당이 승리한다. 그런 승리를 거머쥐려면 가장 가시화된 사회 집단, 가장 목소리가 큰 계층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주거/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이런 집단은 곧 부동산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익동맹이다. 그러니 기존 부동산 이익 구조를 재편하거나 해체하는 해법이 나올 리 만무하다.
혹자는 양당정치라 하더라도 거대 정당 안에서 당 내 정파들이 각각 특정한 집단-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당 내 논쟁을 거쳐 이를 조율한다면, 시민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논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주거/부동산 문제에서는 이게 통하지 않는다.
이미 그 이유를 살펴봤다. 부동산 계층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고, 양대 정당은 승자독식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계층들 가운데 그나마 뚜렷한 우위를 점하는 집단의 지지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두 정당 내부에서 각 계층의 이해관계는 결코 토론과 협상을 거쳐 조율되지 않는다. 단지 늘 승자가 되는 계층의 이익을 중심으로 모든 목소리가 막후에서 통제될 따름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면? 지역정당이 허용된다면?
소선거구제-양당정치 조합이 아니라 비례대표제-다당정치 조합이라면 그럼 어떨까? 한국의 부동산 계층 구조와 같은 사회적 균열을 반영하는 데는 분명히 후자가 더 효과적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사회 집단들이 각각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고 대의기구에 진출시킴으로써 사회적 균열이 대의 정치에 원활히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당들이 서로 격렬히 대립하기도 하고 연립정부 구성 등을 타협하기도 하면서, 사회 집단들 사이의 논쟁과 협상, 잠정 합의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이나 덴마크처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고 가정해보자. 스웨덴은 한 선거구에서 의원을 최소 2석에서 최대 40석까지 선출하며, 덴마크는 최소 2석에서 최대 18석까지 선출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고, 원할 경우에는 해당 정당의 후보들 가운데 가장 지지하는 후보에게도 기표한다(개방형 명부). 그러면 각 정당이 받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정해지며, 유권자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후보부터 그 의석을 채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의회를 구성하기에 항상 압도적 다수당 없이 여러 정당이 원내에 진출한다. 스웨덴 의회에는 현재 8개 정당이 있고, 덴마크 의회에는 12개 정당이 있다.
이런 비례대표제-다당정치 체제에서는 각 당이 대변하는 계급-계층이 소선거구제-양당정치 체제에 비해 훨씬 세분화되어 있다. 가령 덴마크의 사회민주당, 녹색좌파당, 적록연합은 모두 좌파정당이지만, 주된 지지층이 다르다. 사회민주당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전통적 노동계급이 주로 지지하고, 녹색좌파당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적록연합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그래서 이 세 정당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은 곧 노동계급 내 여러 분파가 서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이 된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부동산 계층들이 자기 입장에 가장 가까운 주거/부동산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에 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에 던진 표가 사표가 될 일 없이 고스란히 국회에 의석으로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동산 기득권층의 눈치만 보는 두 거대 정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깔의 여러 정당들이 국회에 포진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총 48인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서울을 두 개의 대선거구로 나눠 각각 24인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면, 24명의 당선자 가운데에는 분명 지금은 국회에서 '투명인간' 취급만 당하는 부동산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의 후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한 이익동맹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의 당선자도 있겠지만, 그 옆에는 반드시 정반대 목소리를 내는 정당의 당선자가 있을 것이다. 이래야만 진정한 논쟁과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가장 취약한 계층의 목소리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반영되는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상상력을 지역정치로 뻗어보자. 지역정당을 불허하는 현행 정당법이 개정돼 지역정당을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지역정당은 무주택 세입자 같은 부동산 약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전국정당이 아니어서 취약 계층이 창당에 나서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정당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임차인 단체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만약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법률적 족쇄가 지금 당장 풀린다면, 모르긴 해도 주거 문제가 심각한 수도권에서는 곧바로 '월세 세입자 정당'이나 '청년 주거권 정당'이 등장할 것이다.
물론 지방의회에서도, 소선거구제가 아닌 비례대표제를 실시할 경우에 이런 지역정당의 원내 진출이 훨씬 더 용이하다. 부동산 취약 계층을 조직한 지역정당이 진출하기도 쉬워지고, 이에 맞서 부동산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이 등장해 의석을 확보하기도 쉬워진다. 그러면 굳이 지역별 임대료 협상 테이블을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지방의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회는 해당 지역의 주택 수급 사정이나 적정 임대료 수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치개혁 없이 주거/부동산 문제 해결 없다
소선거구제-양당정치 조합에 바탕을 둔 정치 질서가 미동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부질없다 여겨질지 모른다. 허망한 공상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공상이라도 감행해야, 지금 우리가 주거/부동산 문제를 정치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낡은 정치 형식 때문에 얼마나 쓸데없이 헤매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주거/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철인 군주'가 돼주길 바라는 어리석음은 이제 집어치워야 한다. 오직 모든 부동산 계층이 대의기구에 그대로 반영되고 만인의 눈앞에서 그 대변자들이 서로 싸우고 협상하며 타협하게 할 때에만 주거/부동산 문제는 풀려나갈 수 있다.
요컨대 비례대표제-다당정치로 나아가는 정치개혁 없이 주거/부동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오디세우스의 방랑이 그 자신의 오만의 결과이듯이, 매번 주거/부동산 문제에 발목이 걸려 고꾸라지는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부의 운명은 바로, 정치개혁을 공약하고는 번번이 파기한 범민주당 세력 자신이 만든 작품이다.
[장석준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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