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조카 칼튼 씨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었나요?
터메이어스 씨) 칼튼은 유쾌하고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죠. 유머 감각도 아주 뛰어났고 가족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가 흥미를 갖지 않는 주제란 없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철학과 경제학을 모두 복수 전공했습니다. 정말 조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앵커) 당시 조카는 나이가 어땠나요? 그 비행기에 타게된 건, 어떤 일 때문이었나요?
터메이어스 씨) 존 핸콕 보험회사의 채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하다가 그해 1월에 이직한 상태였죠.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비즈니스 미팅이 있었는데, 조카는 참석하는 데 크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상사가 '칼튼, LA에 보고 싶은 친구들도 있지 않나? 그러니 출장을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오게. 미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되니 그냥 다녀오게'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조카는 '좋습니다, 가겠습니다'라고 했고, 그렇게 그 비행기에 타게 되었습니다. 당시 31살이었습니다. 1970년생이었죠.
앵커)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그 비극적인 아침으로부터 25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가족분들은 칼튼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이어가고 계신가요? 슬픔이 조금은 진정되셨는지, 아니면 여전히 매년 언론의 조명으로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시는지요?
터메이어스 씨) 후자가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칼튼의 어머니인 제 누이가 지난 3월에 세상을 떠나서, 저희 가족은 그 상실감 또한 겪어내고 있습니다. 칼튼의 아버지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에 있는 같은 집에 여전히 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죽음은 제가 쓴 책에서도 밝힌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가족을 갈라놓기도 했습니다. 칼튼의 누이 중 한 명은 제가 이 책을 쓰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고, 그로 인한 분열로 인해 지금까지도 제 조카딸 티파니와 소원한 상태입니다. 반면 칼튼의 아내였던 헤이븐과 제 누이는 제가 책을 쓰기를 무척 바랐고, 그래서 집필을 진행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가족 내에 분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그날 일어난 일에 망연자실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 캔자스시티스타 신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주식 시장 동향을 확인하려고 칸막이 안의 작은 흑백 TV를 켜두고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CNN으로 채널을 돌렸고,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직후 편집국 간부들은 제가 31년 전 입사 이후 처음으로 호외를 발행하기로 결정했고, 저에게 주요 논평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 시간 반 만에 800단어 분량의 칼럼을 쓰며 이 참사의 의미를 짚어내야 했습니다. 글을 쓰던 도중 아내에게서 누이의 이메일을 읽어보았느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제목에 '매우 나쁜 소식'이라고 적혀 있었고, '칼튼이 그 비행기에 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칼튼과 매우 가까웠던 만큼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저는 프로 저널리스트로서 쓰던 기사를 끝마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사 후반부에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 첫 기사에 대해서조차 탐탁지 않아 했던 가족 구성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줄곧 적잖은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앵커) 저서 '사랑, 상실, 그리고 인내'에서 9·11 테러 이후 가족이 겪은 깊은 트라우마를 다루셨는데요. 이 책이 가족 내에 갈등을 낳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터메이어스 씨) 집필을 반대했던 한두 명의 가족은 제가 칼튼의 죽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얻은 수익은 거의 없으며, 저는 처음부터 그럴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전국에서 9·11로 직계 가족을 잃은 유일한 현직 전문 언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캔자스시티스타에 다른 동료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마이크 케이시 기자입니다. 그의 사촌이 그날 국방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 책을 통해 공적인 인물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사생활을 지킬 것인가의 선택이었고, 일부 가족은 사생활 보호를 택했지만 저에게는 그러한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앵커) 지난 25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느끼신 '슬픔'과 '치유'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터메이어스 씨) 제가 미국 장로교의 장로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9·11 이전부터 교회에서 '애도 사역'에 참여해 왔고 비탄의 과정을 다각도로 공부해 왔으며, 현재 제 아내도, 애도 지원 그룹을 이끄는 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것이 하나의 과정이며, 제게 공동체의 지지와 영적 지원이 있고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칼튼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습니다. 칼튼은 종종 '삼촌, 내가 얼마나 키 크고 잘생겼는지 알아요?' 같은 유쾌한 이메일을 보내오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정답게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였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비탄의 고통은 여전하지만, 25년이 흐르면서 조금은 누그러들었고, 잃어버린 것을 계속 직시하면서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앵커) 9/11테러의 피해 가족으로서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터메이어스 씨) 사실 9·11 참사 당시 제가 하던 일과 같은 맥락입니다. 독자들에게 여러 종교가 본질적으로 같은 가르침과 교훈을 공유하고 있으며, 종교 간 상호 존중과 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일입니다.
9·11 발생 1년도 채 되지 않아 저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등 중동 지역을 방문해서 종교와 정부 지도자들을 만나 이슬람의 영혼을 둘러싼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그 싸움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슬람이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고귀한 전통 중 하나이며, 종교를 오용한 납치범들이 종교를 더럽혔다는 점을 알리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기독교나 유대교에서도 과거 십자군 전쟁이나 성경을 왜곡해 노예제를 옹호했던 것처럼 종교를 오용한 역사가 있습니다. 종교가 왜곡되는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앵커) 선생님의 활동은 폭력적 극단주의를 어떻게 예방하고 차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런 어두운 길로 이끌까요? 사회는 어느 지점에서 관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터메이어스 씨) 수많은 요인이 사람을 그 길로 이끌 수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지와 서로 다른 문화 및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경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리노이주 북부의 7,500명 규모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는데, 흑인 한 가족과 유대인 한 가족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백인이었습니다. 만약 그곳에만 머물렀다면 시야가 대단히 좁았겠지만, 부모님께서는 1950년대에 저희를 데리고 2년 동안 인도로 이주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리노이대학교 농업팀 소속으로 파견되셨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거치며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13살이 되었을 때는 세상에 대해 훨씬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종교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극단주의라는 어두운 길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앵커)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가족회' 활동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깊은 개인적 상실을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옹호 활동으로 전환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자신의 치유 과정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터메이어스 씨) 네,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유가족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전화나 화상 회의로 소통해 왔지만, 뜻을 함께해 온 동료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결코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뼈아픈 계기로 주어진 기회였지만, 저는 이를 바탕으로 평화의 메신저이자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느꼈고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앵커) 현재 젊은 세대들은 2001년 9월 11일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이른바 '포스트 9/11 세대'가 선생님 가족의 경험을 통해 얻기를 바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것일까요?
터메이어스 씨) 자신이 모든 진리를 다 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접해봐야 할 수많은 진리와 통찰이 존재합니다. 세상은 대단히 다양하며, 자신과 모든 면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름과 다양성은 오히려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겉모습이 다르거나 다른 영적 신념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을 위축시키고 파괴하는 대신, 생명을 북돋우고 생산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앵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9/11 테러 사태 25주년을 맞아 뉴욕에 모이시면서, 회복력과 인간적 유대감에 대해 어떤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십니까?
터메이어스 씨)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최악의 비극을 겪더라도 우리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배우고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작은 구멍으로 숨어들어 사라지거나,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고통받는 타인을 도울 수 있으며, 많은 분들이 그런 다짐을 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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