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사는 사람이 3만 명쯤 돼요."
9월 1일 오전 6시, 홍콩 도심 북쪽에 위치한 '사틴'의 '슈이췬오 공공임대주택단지'에서 만난 한 남성은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산비탈을 따라 늘어선 고층 아파트 18개 동에는 공공임대주택 1만1,123호가 들어서 있다. 입주는 2015년 시작됐다. 그는 "홍콩섬 도심까지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걸려 아침마다 서두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홍콩은 주거난이 극심한 탓에 이 단지가 들어서자 다행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9년 전, 슈이췬오 단지 옆으로 또 다른 주거단지가 들어올 뻔했다. 2017년 5월 홍콩 정부는 주거난 해소를 위해 슈이췬오 단지와 맞닿은 '마온산 자연공원'의 주변부 0.2㎢에 공공주택과 비영리 노인시설을 짓고자 했다. 슈이췬오 단지 등 기존 주거지와 기반시설에 인접해 있어, 왜 개발 대상지로 검토됐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곳과 함께 홍콩 북서부에 위치한 타이람 자연공원 주변부 0.2㎢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자연공원 주변부에 대한 두 개발안은 모두 추진되지 않았다. 공원 부지를 다른 주택 공급 방안과 비교·검토하고 5개월에 걸쳐 시민 의견을 들은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서울 용산공원 일부에 주택을 지으려는 한국 정부가 살펴볼 만한 과정이다.
홍콩 당국이 자연공원 개발 가능성을 검토한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홍콩의 주거난 해소는 시급한 정책 과제였다. 2016년 인구조사 당시 홍콩 가구의 1인당 주거면적 중위값은 15㎡(약 4.5평)에 불과했다. 반면 자연공원 면적은 컸다. 당시 24개 자연공원은 홍콩 전체 육지 면적의 40%를 차지했다. 법적으로 지정·관리 체계가 달라 비교에 한계가 있지만, 한국의 국립·도립·군립공원 면적이 국토의 약 5%인 것과 비교하면 8배 정도 차이가 난다.
개발 검토 규모는 제한적이었다. 마온산 자연공원 총면적(28.8㎢)의 0.7%로, 여의도 면적(2.9㎢)의 15분의 1에 해당한다. 마온산과 타이람의 후보지를 모두 합쳐도 당시 전체 자연공원 면적의 0.1%에 못 미쳤다.
당시 이 방안을 제안한 렁춘잉 전 홍콩 행정장관(홍콩 정부 수반)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말했다. "홍콩 전체 토지 면적의 약 40%가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건 홍콩이 주택 수나 1인당 주거면적 측면에서 지금과 같은 주택 부족을 겪기 전에 이뤄진 일이다. 공원 일부 지역은 방문객이 거의 없어 생태·휴양·경관 가치가 없거나 매우 낮고, 기존 교통 인프라와 가까워 주택 개발에 적합한 곳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 공급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렁춘잉 정부는 2017년 5월 홍콩주택협회에 두 후보지의 생태·기술 조사를 의뢰했다. 객관적인 자료를 마련해 합리적인 논의를 돕는다는 목적이었다.
렁 장관 퇴임 후 같은 해 7월 출범한 캐리 람 정부는 이 구상을 이어받아 토지공급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면서 공론화 범위를 넓혔다. TF가 맡은 일은 자연공원 후보지를 포함한 18개 토지 공급 방안을 비교하고 우선순위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스탠리 웡 위원장을 비롯한 비정부위원 22명과 정부위원 8명이 참여했다. TF는 2017년 9월부터 1년 6개월간 활동했다.
시민 의견 수렴도 빼놓지 않았다. TF는 2018년 4월부터 5개월 동안 공개 포럼과 순회 전시, 이해관계자 회의·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무작위 전화조사에서 해당 지역 개발에 대한 지지가 52.7%로 나오는 등 찬성 의견도 적지 않았다(반대 44.0%).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개발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구체적으로 나왔다. 일단 어디까지를 '주변부'로 볼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해당 지역 역시 공원의 일부이며 핵심 생태지역과 시가지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슈이췬오 단지에서 만난 주민 찬와이만은 "아주 작은 땅을 개발한다고 해도 공사 과정에서 숲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며 "이 역시 고려해야 할 잠재적 비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단지 옆에 있는 공원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야생 멧돼지 두 마리와 마주쳤다.
일부 개발을 허용하면 공원 안쪽으로 개발이 확대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당시 공원이 아닌 저이용 토지 등을 먼저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간 연구단체 리버리서치커뮤니티의 찬킴칭 연구원은 한국일보에 "'주변부'라고 불리는 일부 지역의 개발을 허용하면, 다음에는 더 안쪽이 '새로운 주변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의를 거쳐 TF는 자연공원 주변부는 개발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TF 보고서에는 "자연공원을 토지 공급 방안으로 활용하는 것을 시민들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에는 현 단계에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명시됐다. 후보지의 생태·휴양 가치와 비교할 때 개발 효과를 판단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 2월 TF의 권고를 전면 수용했다.
한국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용산공원 안의 기존 장교 숙소와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등 일부 부지에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보존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 반대 및 용산공원 부지 주택공급 추진 중단에 관한 청원'은 7일 기준 5만3,000명을 넘었다. '청원서 공개 후 30일 이내 5만 명 이상 동의'라는 소관 상임위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국토부도 '공론화를 거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절차와 일정을 확정하진 않았다. 당시 TF를 이끈 스탠리 웡은 한국일보에 "자연공원 주변부만 이용한다고 해도, 반대 여론이 얼마나 큰지, 토지를 공급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등에 대한 조사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공공 녹지 개발을 추진하기 전에 충분한 공론화와 소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콩=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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