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칼라 '오텔로' 공연 논란
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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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칼라 초청 공연 105억 예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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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 시장 원점 재검토 공약 이행 여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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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오페라하우스 자체 제작 역량 부족 우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성공은 얼마나 유명한 해외 작품을 공연했는가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장진규 부산오페라단연합회장)
'100평짜리 아파트를 지어 놓고 20평짜리 아파트의 가구와 살림으로 채울 수는 없다.'(이승호 전 부산음악협회 회장)
지난달 24일 부산시청 대강당. '부산형 오페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민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저마다 입장은 조금씩 달랐지만 논란의 출발점이자 쟁점은 같았다.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으로 열리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초청 공연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내년 9월 6~11일 라 스칼라는 부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를 정명훈의 지휘로 세 차례 공연하고, 별도의 두 차례 오케스트라·합창단 공연까지 모두 5차례 공연을 연다는 계획이다. 라 스칼라 극장은 베르디와 푸치니의 걸작들을 초연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宗家)'다. '오텔로' 역시 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빛을 보았다. 라 스칼라는 극장 내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까지 모두 포함하는 '제작 극장' 방식이다
출연료·항공료·운송비까지 105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시는 전체 105억원 가운데 50억원은 후원을 유치하고 티켓 수입 20억원, 시 재원 부담 30억원 등으로 예산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선거 쟁점이 된 오페라 공연
하지만 지난 6월 부산시장 선거 과정에서 여야 후보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이 공연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박형준 당시 시장은 '부산 공연장을 세계적 시설로 키우려면 그런 야심 찬 기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전재수 후보는 '시민들의 혈세를 함부로 쓰는 행정'이라며 '대형 사업 예산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불필요한 전시성 행사 예산을 집행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원점 재검토'를 주장했던 전재수 시장이 당선되면서 라 스칼라 초청 공연의 중단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전 시장은 취임 직후에 곧바로 라 스칼라 초청 공연을 백지화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처럼 비치는 등 최근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가령 부산콘서트홀·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기관인 클래식 부산은 정명훈 예술감독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 7월 임기 연장(2년) 계약을 체결했다. 정 감독이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이후에도 공연장을 계속 이끌게 되는 것이다.
또 다음 달 10~11일에는 부산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의 지휘와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콘서트 형식으로 '오텔로'를 선보인다. 전 시장이 라 스칼라 초청작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음악계에서는 '내년 라 스칼라 공연을 진행하기 위한 사전 정지(整地) 작업이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값비싼 수입 공연, 감당할 만한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봇물 터지듯 늘어났다. 1994년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내한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지휘자 역시 이 극장 음악 감독이었던 정명훈이었다. 총 17억원을 들여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와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여는 방식도 지금과 흡사했다. 러시아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가 협연해 화제를 모았다.
해외 오페라 극장의 내한 공연사에서 정점을 찍었던 '일대 사건'은 지난 2005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내한이었다. 나흘간 18시간이 걸리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해외 오페라 극장 전체가 내한하는 방식은 점차 드물어졌다.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나 코엑스 등에서 열렸던 초대형 오페라의 경우에는 최대 200억원까지 예산이 치솟기도 했다. 우선 지휘자와 주요 독창자는 물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까지 수백 명이 이동해야 한다. 거기에 무대 세트와 의상도 들여오거나 별도로 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베를린·드레스덴·라 스칼라 같은 명문 오페라 극장의 경우 오케스트라만 내한해서 별도의 연주회를 갖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오페라를 공연할 때는 무대 세트와 의상만 들여온 뒤 국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예술의전당이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와 손잡고 선보인 2023년 오페라 '노르마'와 2024년 '오텔로' 공연이 이런 합작 방식으로 제작됐다.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지난해 한국의 국립오페라단 전체 예산이 190억원이다. 이 가운데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 공연·영상 사업비는 129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이 예산으로 '피가로의 결혼' '한여름 밤의 꿈' 등 오페라 5편을 16차례 공연하고 지역 공연과 찾아가는 공연도 소화한다. 국립 단체가 아니라 광역자치단체 소속인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오페라단의 예산은 연 20억원 규모다. 지난해 정기 공연과 오페라 갈라 등 9회 공연을 소화했다. 라 스칼라 극장 내한 공연은 서울시오페라단 한 해 살림살이의 5배가 넘는 셈이다.
다음 달쯤 최종 결론 낼 듯
부산시는 지난달 토론회에 이어서 문화협력위원회 심의와 타운홀 미팅 등을 거쳐서 10월쯤 라 스칼라 극장 초청 공연의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내년 9월 개관 공연을 어떻게 할까도 고민이지만, 진짜 고민은 그 이후다. 오페라극장을 채울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산 예술 단체들은 '이탈리아 라 스칼라라는 글로벌 단체의 공연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로컬'의 지역적 정체성을 살리고 '자체 제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래식 부산은 자체 제작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자체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을 현재 120명에서 160명으로 늘리고 창작 오페라 위촉과 공모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연중 불 안 꺼지는 해외 오페라 극장… 韓은 뮤지컬 공연도 포함
빈 오페라 극장(빈 슈타츠오퍼) 270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193회. 매년 빈이나 뉴욕 같은 해외 명문 오페라 극장의 오페라·발레 공연 횟수다. 이 극장들은 여름휴가 기간인 7~8월에만 문을 닫을 뿐, 새로운 시즌이 시작하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오페라와 발레, 오케스트라 연주와 어린이 프로그램 등으로 빼곡하게 극장을 채운다. 말 그대로 연중 불이 꺼지지 않는 셈이다.
빈 오페라 극장에서 3년 이상 재직한 단원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악단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단원들은 빈 오페라 극장 소속으로는 오페라와 발레를 주로 연주하고, 빈 필하모닉 소속으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을 연주하는 '이중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대표적 오페라 극장인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지난해 공연 횟수는 186회다. 얼핏 공연 횟수만 보면 해외 유수의 공연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장르적 착시 현상'이 숨어 있다. 빈이나 뉴욕 같은 해외 오페라 극장은 말 그대로 오페라와 발레 중심으로 공연한다. 반면 한국의 오페라 극장들은 뮤지컬 공연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도 뮤지컬 '웃는 남자'(77회)와 '돈 주앙'(14회)이 공연됐다. 두 뮤지컬을 빼면 오페라·발레 공연은 95회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수도권과 지역 공연장에서는 오페라·발레 공연 횟수 모두 더욱 줄어든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지난해 오페라·발레 공연을 합쳐서 70회에 이르렀다. 지난해 22회를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공연 편수(13편)와 횟수(35회), 관객 숫자(2만여 명) 모두 극장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된다.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의 지난해 공연은 각각 55건과 37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중음악과 뮤지컬 등을 제외하면 오페라와 발레 공연은 더욱 줄어든다.
1548년 창단해서 현존하는 최고(最古) 악단으로 불리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를 기준으로 볼 때 유럽 오페라 극장의 역사는 470여 년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오페라 극장이 처음 들어선 것이 1993년 예술의전당이다.
극장 역사의 차이보다 더욱 두드러진 건 자체 제작 능력 여부다.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까지 모두 포함하는 '제작 극장' 방식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극장(하드웨어)과 오페라단·발레단(소프트웨어)이 분리된 경우가 많다. 극장과 단체를 분리하면 오페라와 발레 제작 여건도 유럽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정호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 교수(공연 칼럼니스트)는 '대구의 경우처럼 자체적인 페스티벌을 열거나 국공립 단체나 지역 오페라단과 협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라 스칼라 극장
1778년 개관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는 240여 년 역사의 명문 오페라 극장이다. 작곡가 벨리니의 '노르마'(1831년), 베르디의 '나부코'(1842년)와 '오텔로'(1887년), 푸치니의 '나비 부인'(1904년)과 '투란도트'(1926년) 같은 걸작 오페라들이 모두 이 극장에서 세계 초연됐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와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 극장의 음악 감독을 지냈다. 지휘자 정명훈이 올해 말 아시아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이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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