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5일 외교안보 부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73년째 이어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중 4자 대화 추진 계획을 보고했다. 직후 취재진을 만난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이상적인 말씀'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대북정책 엇박자'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외교부가 정전체제의 전환이나 평화 프로세스에 관해 대안을 제시했거나 주변국 설득에 나섰다는 소식은 없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비핵화' 대신 '핵 고도화 중단'이라는 표현을 썼다. 남북 간 교착을 타개하려는 고심으로 평가됐는데, 나흘 뒤 조 장관은 중국 측에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가 외면당했다. 이 대통령은 국내 여론과 북한을, 조 장관은 미국을 위시한 동맹과 비확산체제를 각각 대상으로 역할을 분담한 건지 의문이다. 그 자체가 정책 혼선으로 읽혀서다. 실제로 외교부가 공개한 지난달 24일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선 관련 표현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의식해 비핵화라는 표현을 밀쳐둔 상황의 반영일 게다.
2003년 10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위성락 당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건너뛴 채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사실상 수용하는 외교각서 초안을 전달했다. 노 대통령은 줄곧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 적 없다'고 했지만, 2006년 1월 영문으로만 작성된 한미 외교장관 공동선언의 'It(그것)'에 대한 해석 논란(본보 2025년 7월 19일 자 13면 <한국을 '對中 전초기지' 삼으려는 트럼프>)은 20년이 지나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위성락 당시 국장은 이후에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이재명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대통령을 '기망'했다고 지적받은 실무진의 판단을 국가 핵심 안보노선으로 귀결시켰던 반기문 당시 외교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영전해 대권까지 꿈꿨는데, 2005년 북한의 '정전협정→평화협정 전환 제안'에 대한 미국의 검토안을 전달받고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외교부는 오랫동안 외무고시 출신 외교관 중심의 순혈주의와 폐쇄성으로 적잖은 비판을 받아왔다. 2010년 유명환 당시 장관 딸의 5급 사무관 특별채용 논란 이후 개방형 직위를 확대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슬그머니 대폭 축소했다. 특히 북핵 문제가 급부상한 2000년대 들어선 그야말로 '북미국 라인 전성시대'다. 2004~2017년에는 장관 5명 모두가 북미국장·심의관 출신인데, 지금껏 논란인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미군기지 이전 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밀실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한미동맹의 주체적 재구성을 통해 외교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실세 정치인 외교장관'이 필수다. 조직 최상층부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한미동맹 절대주의에 익숙한 인물들로 채워진 상황에서 '이전과 다른' 외교는 불가능하다. 위성락·반기문·유명환 사례나 정동영·조현 충돌 등은 조직의 관성과 순혈주의로 인한 '구조적' 현상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이 만능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호르무즈 파병 문제로 재확인된 복합적인 부담을 '구조적으로' 해소해가려면 조직 장악력과 대통령의 국정철학 관철 의지를 차기 외교수장 인선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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