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특사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잇따라 방문한 가운데 미 측이 겨울이 오기 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밝혔다. 스티브 윗코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사도 '실질적 진전'을 언급, 지난 2월 이란전쟁이 시작된 뒤 멈춰 있던 종전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7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젤렌스키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몇 주간을 외교적 협상의 결정적 기회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느낌상 푸틴은 트럼프를 필요로 하고 있다. 트럼프를 화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약화시키기 위해 또 한 차례 가혹한 겨울을 벼르고 있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틴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에게 외교적 성과를 안겨주려 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젤렌스키는 '그렇다'고 답했다. 푸틴이 긴장 완화를 원치 않더라도 이에 응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면서다.
앞서 젤렌스키는 6일 키이우를 찾은 윗코프와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만났다. 이들은 전날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3시간여 동안 대화한 뒤 젤렌스키를 만났다.
젤렌스키는 미 특사단으로부터 '러시아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미 특사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연이어 방문한 것은 외교적 교착 상태를 풀기(unlock) 위한 목적으로, 새로운 구상들도 함께 가져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젤렌스키는 구체적 논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에너지 시설과 전력망, 곡물 수송, 석유·가스 수출 등을 둘러싼 아이디어들이 테이블에 올랐다'고 말했다. 겨울을 앞두고, 또 겨울이 이어지는 동안 양국이 취할 수 있는 잠재적 긴장 완화 조치들이 논의에 포함됐다면서다. 다만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이견을 시사했다.
젤렌스키에 따르면 미국의 목표는 종전 협상을 재개하는 동시에 이번 겨울 전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러시아는 겨울 동안 맹공세를 퍼부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는 이번 겨울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며 러시아의 협상 의지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러시아는 대규모 겨울 공세와 인프라 공격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고 굴복시키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우리의 전력망을 공격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석유와 가스 판매 능력을 차단했다'며 우크라이나 또한 러시아에 경제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겨울마다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이어지자,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겨울에는 다른 접근법을 취할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는 미국의 목표가 겨울 이전과 겨울 동안 '양측 모두 평화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조치를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9~10월을 외교적 협상 재개의 적기로 삼기를 바란다며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가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회담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젤렌스키가 9~10월을 명시한 데는 미 중간선거 전 협상에 동력이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미-우크라이나-러시아 3자 회담 재개 가능성도 열어두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혹독한 겨울이 닥치기 전에 실질적인 협상 개시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미 할 수 있는 양보는 다 했으며, 어떤 외교적 협상에도 안전 보장과 경제적 지원 패키지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윗코프도 이날 협상 재개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발신했다. 그는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협상단은 종전을 위한 추가적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양국을 방문했다. 추가적인 3자 간 대화 일정 조율이 이뤄지는 등 실질적인 진전(substantive progress)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키이우에 방문했을 때는 영국, 독일, 프랑스의 외교안보 보좌진도 함께 논의에 참여했다고도 소개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구체적 회담 장소와 시기를 논의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면서도 3자 회담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처럼 3국 사이에서 종전을 위한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질적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러시아는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고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영토 및 안전 보장에 있어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휴전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을 도출하기 위한 시도가 수차례 있었으나 무산된 배경도 이 때문이다.
(0)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