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성범죄 피해자, 진술 번복 빈번
형소법 개정 뒤 수사 공백 우려 제기
"성폭력만큼 단순하지 않은 범죄가 또 있을까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수사 검사로 알려진 김세희(44) 법무법인 더킴로펌 변호사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을 앞두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가 맞닥뜨린 성범죄는 가해·피해 구도를 넘어 복잡다단한 인간 관계와 심리적 맥락 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선 그만큼 밀도 높은 시간과 헌신에 가까운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은 사실관계만 따지는 방식으로는 수사할 수 없다"며 "수사체계가 어떻게 바뀌든, 수사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2010년 검사로 임관해 부산지검과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성폭력 전담 검사로 근무하다 지난해 4월 퇴직했다. 부산지검 재직 시절인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맡아, 경찰이 송치한 중상해 혐의 대신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가해자를 기소했고, 피해자의 청바지에서 가해자 DNA를 찾아내 성범죄 정황을 밝혀내기도 했다. 최근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서 이 사건이 검찰 보완수사권 존폐 논쟁과 얽혀 자주 언급되면서 김 변호사도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사실 성범죄는 수사하기 힘들어 검사들도 기피하는 분야다. 성범죄 특성상 물증이 부족하고 목격자가 없어 피해자 진술에 크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자가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경찰 신고 단계부터 재판에서 선고가 나오는 순간까지 "유리알 다루듯" 접근해야 가해자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김 변호사는 강조했다.
그는 특히 수사가 어려운 유형으로 '친족 간 성범죄'를 꼽았다. 대개 피해자는 가정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고, 자신의 진술로 가정이 파괴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수사 과정에서 진술이 번복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피해 회복을 반드시 돕겠다는 확신을 주는 게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친족 간 성범죄에선 피해자가 고립되는 경우도 흔하다. 수사기관 말고는 가족 누구도 피해자 편에 서지 않는 참담한 상황을 수없이 목격했다. 심지어 딸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남편을 구하기 위해 강제로 받아낸 합의서를 들이밀면서 "이제 남편이 석방되냐"고 따져 묻는 어머니들도 만났다. 김 변호사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 속담은 거짓"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검사 앞에서 자식 없이는 살아도, 남자 없이 못 산다고 말하는 어머니도 있었다"며 "가족들이 피해자를 회유하려 하면 강하게 제지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 변호사는 수사의 한계를 실감한 실패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이가 의붓아버지와 의붓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이었다. 아이가 학교 상담교사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려 수사가 시작되자, 의붓아버지는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했다. 가정의 파괴를 목격한 아이는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의붓오빠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고 싶었지만,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 없이는 불가능했다. 결국 불구속 기소를 했고, 피해자는 이후 법정에도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끝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은 그 아이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고 씁쓸하게 털어놨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일하는 지금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의뢰인의 권리 구제다.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수사기관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찰의 사건 처리 부담은 커졌고, 보완수사 기간은 짧아졌으며, 검사가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들여다볼 기회는 사라졌다. 의뢰인들 역시 앞으로 사건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아무리 자료가 충실하다고 해도, 피해자를 만나지 않고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간격을 메울 수 없다"며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주변인으로부터 압박받아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성범죄 피해자의 조서는 빈 곳이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체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친족 간 성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뒤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는 상황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가 속 편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가족과의 즉각적 분리, 심리 전문가가 제공하는 양질의 상담 등 실질적 보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거듭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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