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지급기에 달 버튼 하나를 고르려고 청계천 시장의 어두운 골목을 뒤졌다. '모두의 생리대' 사업명을 고르려고 20개가 넘는 후보를 놓고 몇 날 며칠 고민했다. 로고 색이 예쁘면 더 손이 가지 않을까 싶어 열 차례 넘게 색 조합을 바꿔봤다.
성평등가족부가 올해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모두의 생리대' 사업은 여러 어려움을 뚫고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부터 "국내 생리대 가격이 해외와 비교해 비싸다"고 공개석상에서 지적한 것이 사업 착수의 계기가 됐다. 성평등부는 몇 개월 만에 공공 생리대 사업을 구체화했다.
이 사업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한 순간 생리대를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공중화장실의 휴지가 당연한 것처럼 공공시설에서 생리대를 자연스럽게 꺼내 쓰는 풍경을 그렸다. 7일 모두의 생리대를 세상에 내놓은 성평등부 주역들을 만나 탄생 비화를 들었다.
올해 초 성평등부 내 생리대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실무자 5명이 모여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머리를 맞댔다. 생리대 종류와 지급 방식부터 기계의 색상·모양·버튼까지 하나씩 정해 나갔다.
공공 생리대 사업은 기존 취약계층 여성청소년 대상 생리대 바우처 사업에서 출발했다. 논의는 소득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필요한 사람 누구나 현장에서 생리대를 쓸 수 있게 하자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최혜민 성평등정책과 과장은 "여성 필수재인 생리대를 저소득층에만 지급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대통령의 발언이 사업 확대의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TF 초기부터 사업 실무를 맡아 진행해온 고혜경 성평등정책과 사무관은 제작 과정을 두고 "아이를 낳아 세상에 내놓은 느낌"이라고 했다. 정부가 직접 제품을 만들어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건 이례적이다. 실무자들은 "정부가 주는 물건이라고 질이 낮거나 촌스러워서는 안 된다"며 깐깐하게 업무에 임했다.
생리대부터 직접 골랐다. 경쟁 입찰에 나온 제품을 가져와 향을 맡고 만져보며 순면·무향 제품을 추렸다. 이렇게 깨끗한나라가 생산한 '순수한면 제로순면' 중형 생리대 2개를 넣어 공공생리대 1팩을 구성했다.
지급 방식을 결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 있어야 하지만 무분별한 사용은 막아야 했다. 휴대전화 인증은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직원 요청 절차를 거치면 생리대를 달라고 말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결국 수동과 자동 지급기를 각각 만들었다. 수동 지급기는 작고 저렴해 많은 곳에 설치할 수 있고, 자동 지급기는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해 재고와 이용량을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버튼을 누른 뒤 20초가 지나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 남용 가능성도 낮췄다.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첫 시안에 나온 지급기의 버튼이 투박한 것을 본 주무관 두 명은 청계천 시장에 나가 버튼을 직접 골라 왔다. 로고와 지급기, 포스터 색상만 해도 최근 유행하는 가전제품 색상을 참고해 조합을 해나갔다. 고 사무관은 "주 사용자가 2030 여성들이 될 텐데 실수요자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세상 밖에 나온 '모두의 생리대'는 현재 12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수동 지급기 300대는 설치가 끝났고 자동 지급기는 올해 400대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된다.
지난해 여름 은평구 은평구립우리장애인복지관의 사물난타 수업 도중, 한 활동지원가가 다급히 사무실을 찾았다. "생리대 갖고 계신 분 계실까요?" 여성 발달장애인의 바지에 생리혈이 묻은 것을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여직원들이 여분의 생리대를 꺼냈다. 매달 이 일이 반복되자 복지관은 자체 생리대 지급기 설치를 고민하게 됐다.
박지현 운영지원팀장은 "발달장애인들은 갑자기 생리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직원에게 매번 생리대를 빌리기도 난처했는데 공공 생리대 지급기가 생기면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모두의 생리대'가 염두에 둔 것도 이런 사각지대다. '모두의 생리대'는 필요한 순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생활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 수동 지급기는 복지관이나 청소년센터에 주로 배치하고 자동 지급기는 유동인구가 많은 공공시설에 배치한 것도 쓰임새를 고려한 결과다.
최 과장은 "취약계층 청소년 외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많다"며 "증명해야 하는 소득 기준이나 별도 요청 없이도 쓸 수 있는 보편 서비스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도입 한 달 차, 이용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하루 평균 전국에서 700팩 넘는 생리대가 여성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현재 목표는 6개월간 540만 팩의 생리대를 지급하는 것이다. 첫 시도인 만큼 수요에 따라 자동·수동 지급기 설치와 생리대 지급 규모를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
처음부터 모든 공중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휴지 없는 공중화장실이 오히려 어색해졌다. 필요한 사람이 주변을 살피거나 묻지 않고 꺼내 쓰는 것. '모두의 생리대'가 그리고 있는 공공시설의 풍경이다.
최 과장은 "생리는 여성들이 선택한 게 아니고 여성이면 당연히 하는 일이자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며 "그때 당황하지 않도록, 경제적인 이유로 너무 낮은 질의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도록, 적정 품질의 생리대는 이용할 수 있도록 나라가 보장해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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