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은 6일(현지 시간) 이란이 봉쇄 중인 중동의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에 필요한 군사적 부담을 미국만 홀로 떠안을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실상 한국 등 동맹과 우방국의 역할 확대를 압박한 것이다. 그는 미 해군이 해협에 계속 주둔하는 게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라이트 장관은 이 해협에 투입된 미군의 임무가 각국 민간 선박의 호위를 넘어 이란산 원유 및 수출품을 차단해 이란 정권의 자금줄을 압박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대(對)이란 봉쇄 작전에서도 한국에 역할 분담을 요구한다면 한국군의 임무 범위를 둘러싼 고민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한국의 파병에 반대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7일 X에 한글로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는 문구와 항해 중인 군함이 담긴 합성 이미지를 올렸다. 또 파병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글도 게시했다.
● 美 해군 핵심 임무는 이란 원유 차단' 라이트 장관은 이날 CNN, ABC, CBS, 폭스뉴스 등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 등을 위해 다른 국가도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다른 국가들이 우리에게 연락해 왔다'며 '그들은 우리와 협력하고 싶어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미국 외에는 중동 지역 동맹·우방국의 군사 자산만 작전에 관여하고 있다며 '역외에서도 조속히 그런 자산들이 들어오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역내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며, 실제로 그런 도움을 일부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미 해군의 핵심 임무는 단지 선박들을 호송해 내보내는 것뿐 아니라 이란산 원유나 다른 수출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의 역할이 각국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는 건 물론이고, 이란산 원유 수출을 차단하는 '봉쇄'까지 수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이 향후 동맹 및 우방국에 이에 관한 역할 분담까지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파병을 검토 중인 한국 등 동맹으로선 상선 보호에 역할을 국한할지, 미군의 봉쇄 작전과도 일부 연계할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상초계, 기뢰 탐지·제거, 군수 지원 등도 구체적인 임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가령, 상선에 대한 미사일·드론 위협을 감시하거나 기뢰를 제거하면 '항행의 자유' 지원 성격이 강하다. 반면, 이란 유조선의 위치·항로를 추적하거나 봉쇄 작전 중인 미군 함정을 지원하면 사실상 미군의 대이란 압박 작전에 한국이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다만, 이란은 어떤 형태의 파병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바가에이 대변인은 7일 X에 한글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건 침략 행위 당사자(미국)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모센 레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6일 국영방송을 통해 해협 밖에 신규 '제한 구역'을 조만간 설정하고, 이 구역으로 진입하는 선박은 제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한국도 조만간 군사적 기여 방식 확정할 듯 다국적군을 주도하는 영국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군 자산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파견하면서 한국도 조만간 군사적 기여 방식을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해양 안정화를 위해 주둔하던 선박들도 홍해 인근으로 파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는 미국과 유럽, 이란 등 관련국들과 소통하며 군사적 기여 정도를 조율하면서도 구체적 투입 자산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국방부 정빛나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 자유 항행의 조속한 회복과 중동의 평화 안정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에 대해 미국 측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면서도 '특정 자산에 대해서는 현재 결정된 바가 없다'고 했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조동주 기자 djc@donga.com
(0)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