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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이재명과 유시민이 이론과 추상서 벗어나 정책 문제로 들어가면 생산적인 논의와 합의가 가능할 텐데
그들은 왜 소통이 불가능한 운동권 시절의 노선 투쟁을 끌어들이려는 걸까?
양쪽 모두 이젠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끝났다는 걸 깨달을 때에 비로소 소통의 문도 열릴 것이다
정당은 약해졌지만, 유권자의 당파성은 더욱 강해졌다. 이게 바로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이다.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서 비롯된 당파적 행동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미국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2022)라는 책에서 이런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의 미국 정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투표에서 특정 정당을 더욱 일관적으로 지지하게 됐다. 이것은 우리가 투표하는 정당을 더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편 정당을 더 싫어하게 됐기 때문이다. 희망과 변화가 미약해지는 순간에도 두려움과 혐오는 계속된다.'
4년 전 이 지면에 쓴 '윤석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개했던 주장이다. 이 주장을 또 써먹을 일이 4년 후에 생길 줄은 몰랐다. 나는 당시 칼럼에서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공포와 혐오를 느낄 대상이 사라졌거나 그 대상을 무시해도 좋을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정권교체는 윤석열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얻을 반사이익이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해의 극치라고 해도 좋을 오만'에 빠진 윤석열에 대한 경고였다.
이름만 바뀐, 같은 제목의 칼럼을 또 써야 한다는 건 비극이지만, 자기파멸을 재촉한 윤석열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자. 작가 유시민은 2021년 12월 과거 자신이 이재명에 대해 '감정조절에 하자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 것에 대해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학습능력과 자기발전 능력을 제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정정한 바 있다. 이재명의 그런 학습능력과 자기발전 능력을 믿어보기로 하자.
이재명은 윤석열과는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르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일부 유권자들이 갖고 있던 강한 반감의 수혜자였을 뿐, 이렇다 할 자기만의 '정치상품'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어퍼컷 세리머니' 정도일 텐데, 이건 상대편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양념'일 뿐 독립적인 상품은 아니었다. 반면 이재명에겐 '일을 잘하고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건 상당 부분 그의 실체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재명 비판자로 돌아섰지만, 한동안 유시민은 가장 뜨거운 이재명 예찬론자였다. 그의 예찬이 바로 그런 이미지와 실체에 집중됐다. 다른 건 다 무시해도 괜찮다는 식이었다. 그는 이재명의 전과 4건 중 검사 사칭, 선거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는 흠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음주운전은 잘못된 거고 나머지 3개는 상처예요. 흠결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봐요.' 그는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100% 민영 사업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잘한 일'이라며, 대장동 논란에 대해 '공공 이익을 하나도 못 가져오는 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그러는 것은 너무 낯 뜨겁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건 경쟁자인 윤석열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유시민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재명은) 코로나19 과정에서 신속하고 전광석화 같은 일처리, 단호함으로 매력을 샀다'고 했다. 이어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덕이나 품격 등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지지자들도 '이재명이 일 잘해' '뭔가 하려면 저렇게 해야 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머리 타령' 웃어넘기면 안 돼
유시민은 MBC 인터뷰에선 이재명의 '강점'에 대해 '머리가 좋은 것'이라며 '윤석열 후보는 (사법연수원생) 1000명 뽑을 때 9번 만에 된 분이고, 이재명 후보는 300명 뽑을 때 2번 만에 됐다. 일반 지능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려되는 부분'은 없냐는 질문에 유시민이 다시금 강조한 것도 '머리'였다.
'되게 영민해요. 그러니까 머리가 좋은 사람 중에도 맑은 사람이 있고 탁한 사람이 있지만 머리가 좋지 않으면 맑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요. 그게 어떤 분들은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매우 영리하거든요. 영리하다는 표현은 사실 좋은 표현은 아닌데 영민해요. 그러니까 어떤 사안에 대해 실사구시적으로 그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하고 판단하고 이 능력이 뛰어나요.'
이재명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1986년 제28회 최종 합격자 수는 300명이고, 윤석열이 합격한 1991년 최종 합격자 수는 287명이었다. 한 시민단체는 '유시민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 '사법시험 최종 합격까지 응시한 횟수와 지적능력은 관련성이 거의 없다고 할 것이므로 매우 악의적인 논리 비약'이라며 유시민을 공직선거법상 허위공표와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건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유시민이 내내 '머리 타령'을 한 것에 대해선 웃어넘기기만 하면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최고의 선동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보진영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데 탁월한 유시민이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그의 모든 결점과 흠을 감추고도 남을 콘셉트이자 무기로 '일' '영리' '영민' '머리' 등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잘러'라는 신조어가 이재명의 별명이 되다시피 한 것은 유시민 혼자서 해낸 일은 아니지만, 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실용주의 흉내만 낼 뿐 되레 역행
이재명은 정녕 '일잘러'인가? 윤석열과 비교해 평가하자면,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니 윤석열보다 100배 더 유능하다고 해도 동의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이재명이 '일잘러'라는 건 맞지만, 그건 좀 부풀려진, 과대평가된 주장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해선 지지자일지라도 고민해볼 사람들이 좀 있을 게다. 한 걸음 더 들어간 이 질문은 어떤가? 윤석열에 대한 '부정적 당파성'의 일환으로 강조된 '일잘러' 이미지와 믿음이 이재명을 오만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낸 점은 없을까?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2026년 1월25일)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 정비보다도 훨씬 쉽다.'(2026년 1월31일) '하늘이 제게 생명 보전을 넘어 큰일까지 맡겨주셨다.'(2026년 5월9일) '올해를 세계 어떤 나라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담대한 꿈이 시작된 해로 삼겠다.'(2026년 6월8일)
이건 이재명이 그간 외쳐온 '실용주의' 언어가 아니다. 실용주의는 겸손을 필요로 한다. 6·3 지방선거 결과가 시사하듯이, '내란 종식 프레임'으로 정국 주도권을 유지해왔던 민주당 전략, 즉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국민의힘의 '윤어게인' 지도부가 윤석열의 뒤를 이어 '부정적 당파성'을 키워주려 애쓰고 있긴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생계형'인지라 가긍할 뿐 민주당의 기대엔 미치지 못할 게다.
이젠 민주당이 강성·강공 전략을 재고할 때도 됐건만, 그게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 전략을 줄곧 요구했던 기존 지지 기반을 지키고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세력이 내부에 만만치 않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이론과 추상에는 반대적인 개념인데, 평생 이론과 추상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에겐 그런 실용주의는 반역인가보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의 문제는 실용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실용주의를 흉내만 낼 뿐, 실용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일' '영리' '영민' '머리' 등을 내세우면서 이재명 지지를 호소했던 유시민이 '일'에 대해선 아무말 없이 엉뚱하게도 핵심 콘셉트가 '배신'인 'ABC론'을 들고나오면서 대통령을 향한 포문을 연 게 안타깝다.
'일잘러'는 단지 윤석열을 압도하기 위한 전략적 용도로만 기획된 것이었을까? '증축'을 하건 '재건축'을 하건 민주당 내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건 국민의 민생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쟁점일 뿐이다. 이론과 추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정책 문제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생산적인 논의와 합의가 가능할 텐데, 왜 소통이 불가능한 운동권 시절의 노선 투쟁을 끌어들이려는 걸까? 싸우는 양쪽 모두 이젠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끝났다는 걸 깨달을 때에 비로소 소통의 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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