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좡발짱' 썸네일 갈무리.
전정윤 | 논설위원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남자가 있다.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고, 8년간 두 다리로 지구에 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책, 미디어, 뉴스가 아니라 제 눈으로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 도보여행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됐다. 경기도 평택 부용산에서 시작해 일본과 미국 알래스카 종주를 마쳤고, 최근엔 캐나다 유콘주를 걷고 있다. 그가 '좡발짱'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영상엔 자극적인 사건도, 호들갑 떠는 멘트도, 흔한 외국 맛집 먹방도 없다. 출발할 때 검은색이었다가 이제 누렇게 빛바랜 아디다스 반팔 티셔츠를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 속을 구도자처럼 걷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에 빠져들어 정주행과 역주행을 오간다. 6일 기준 구독자가 7만명인데 70만 유튜브 채널보다 댓글이 많고, 최근 하루에도 구독자가 1만명 가까이 늘면서 '떡상'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여행 콘텐츠의 주인공이기 마련인 이국적 풍경에 잠시 호기심이 일지만, 반복되는 풍경은 금세 관심사에서 멀어진다. 그 지루한 길을 매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주인공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현지인들은 남루한 여행객을 홀대하기는커녕 극진하게 환대한다. 충남 아산의 커피숍 사장님은 커피 한잔 주는 걸론 아쉬웠는지 굳이 그의 목에 쿨링 목밴드를 걸어주고, 휴게소 사장님은 당장 마실 시원한 물도 모자라 나중에 마실 얼음물까지 챙겨 준다. 막걸리를 사러 들어간 가게에선 한병 값에 두병을 받아 나오고, 국도 길가 과일 가게에선 복숭아 하나를 거저 받는 식이다.
'정 많은' 조국 땅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7개월간 이어진 일본 종주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외국인인 그에게 여비를 쥐여주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미야기현의 센베 가게 할머니는 '왕창 주고 싶지만, 짐이 많아지면 안 되니까 적당히' 가장 맛있는 과자를 챙겨 주며 눈물을 훔친다. 좡발짱이 알래스카 카페에서 산 음료수를 바닥에 쏟고 망연자실한 사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페 주인은 더 맛있는 새 음료수를 만들어 가져온다. 덤으로, 재료를 너무 많이 넣어 못생겨진 8인치짜리 거대 파니니도 만들어 준다. 미국과 캐나다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들은 쉴 새 없이 그의 앞에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주민들은 가지고 있던 음식을 탈탈 털어 그의 부족함을 채우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좡발짱이 올린 영상은 62개인데, 낯선 이웃들의 호의가 끝나지 않는 길처럼 이어진다. 잠시 스친 인연들이 건네는 음식 덕분에, 그는 하루 20㎞씩 걸으면서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 알래스카 주립 캠핑장 관리인 밥 아저씨는 자력으로 여행을 이어가고 싶어 하던 그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렛 뎀 헬프 유.'(그들이 너를 돕게 두라.)
아름다운 제주도 올레길도 흉흉한 소문이 무서워 홀로 걷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혼자 일본을 배낭여행하던 한국인 남성이 실종된 지 3년이 넘었고, 북미 고속도로에서 '아메리카 사이코'한테 걸려 연쇄살인 피해자가 된 영화와 뉴스도 많다. 누군가 길 위에서 낯선 사람을 해하는 드문 사건은 이야기가 되지만, 낯선 이에게 건네는 평범한 이웃들의 선의는 주목받지 못한다. 막상 좡발짱이 책·미디어·뉴스를 벗어나 두 발로 경험하는 길 위엔 환대와 온정, 걱정과 연민, 응원과 격려, 그리고 그 마음을 드러내는 도움의 손길이 가득하다. 그의 영상엔 이런 댓글이 많이 달린다. '저는 사람을 싫어해서 피해 주지도 피해 받지도 않고 살자는 주의인데, 이 영상을 보면 만나는 사람들의 베풂과 마음이 인류애를 충전시키고 치유해주는 느낌이 듭니다.'
'나니모 나이.'(아무것도 없다.) 좡발짱은 일본 동쪽 끝 앗케시만에서 점점 더 황량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앗케시만의 광활한 바다도, 알래스카와 유콘의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고속도로도 매일 보면 익숙해지고 지나오면 그뿐이다. 오히려 목마른 길 위에서 건네받은 물 한병, 복숭아 하나, 샌드위치 한 조각이 계속 걸을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는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걷다가 낯선 이웃을 만나고, 그들이 건네는 호의를 받고, 그들의 이름을 묻고, 고맙다고 말한 뒤 다시 걷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거창한 대자연이나 인류애가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친절한 타인의 얼굴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좡발짱의 급부상이 일깨워주고 있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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