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역 뒷골목의 한 건물 출입문에서 기묘한 논쟁을 목격했다. 여기 새로 문을 연 카페 이름이 'homeless'. 이 동네 주민이라고 밝힌 이가 '타인의 가난을 간판으로 쓰지 말라'고 쓴 쪽지를 붙였다. 알다시피 이 부근은 무료급식 받으려는 노숙인들이 줄을 선, 서울에서 homeless가 가장 많은 동네 중 하나다. 그 쪽지 아래에 주인장이 반박하듯 다시 붙여놓은 A4용지가 있었다. '조폭떡볶이도 있고 바보낙지도 있지 않나. 그게 조폭 미화고 장애인 비하냐. 우리에게 homeless는 집없는 사람이 아니라,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취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약자의 결핍과 생존 노력을 '자유'와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한, 그야말로 낭만적 해명이었다.
'오빠 로비'와 '가족소득당'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나는 이번 인사 파동에 더 본질적인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단한 인생을 가로채 자신의 트로피로 만드는 이들의 두꺼운 얼굴 얘기다.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스스로를 '30대 워킹맘'으로 불렀던 순간을 기억한다. 참으로 편리한 정체성이다. 그는 2021년 생후 두 달 된 아이를 안고 국회로 출근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아이 동반 출근'이라는 정치적 브랜드를 획득했다. 하지만 같은 30대 워킹맘인 한 후배는 이렇게 반문했다. '제가 두 달 된 아이를 안고 회사에 가면, 부장님과 동료·후배들이 어떻게 바라볼까요?'
국회의원에겐 화려한 주목을 받는 이벤트가 평범한 직장인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이 된다. 가족여행 가면서 공항 귀빈실을 내놓으라 요구하던 특권층이, 이럴 때는 갑자기 '고단한 워킹맘'으로 변신한다. 특권의 보유자가 평범한 여성의 고달픈 삶을 슬쩍 가져다 훈장처럼 달아매는 순간, 워킹맘의 서사는 정치인의 근사한 간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30대 워킹맘'이라는 말 한마디 가지고 왜 그리 까칠하게 구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위안부 할머니 한(恨) 팔아서 퀀텀점프한 이, '가재 붕어 개구리' 농락하며 서민 코스프레하는 이, 밖에선 '약자 대하는 방식이 국격' 운운하다 뒤로는 보좌진에게 자택 변기 수리를 맡긴 이에 비하면 약과 아니냐고 말이다. 문제는 이들의 행태가 개인의 일회성 일탈이 아니라, 그들 상당수가 공유하는 '기획된 위선'이라는 점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용 의원 남편이 가족소득당 아니 기본소득당의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다시 당선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가히 '내로남불의 불꽃놀이'다.
나는 박완서 선생의 예지력에 늘 무릎을 치는 독자다.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부잣집 대학생은 가난조차 다채로운 체험이자 취향으로 소비한 뒤 본래의 풍요로 되돌아간다. 그 모습을 본 주인공은 불우했던 자신의 인생까지 빼앗겼다는 깊은 환멸을 느낀다. 피 흘린 사람 따로 있고 열매 챙기는 기득권 따로 있는 광주를 보라. 이 기만적인 서사 독점이야말로 가난 훔쳐 제 벼슬 삼은 부잣집 도련님과 뭐가 다른가.
'homeless' 카페나 정치인들의 정체성 가면은 이 비극의 완벽한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서부역 뒤편의 고달픈 노숙(露宿)은 '자유로운 삶'이라는 상업 브랜드로 재정의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은 은폐한 채 '30대 워킹맘'이라는 직장인의 고단함만 가져다 쓴다. 이 뻔뻔한 인생 훔치기 속에서, 시대의 진짜 약자와 서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설명할 마지막 언어마저 도둑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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