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산업정책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추구하는 '동맹 산업기반 협력(allied industrial base cooperation)'의 윤곽이 보인다. 과거에는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으로 해외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했다면, 이제는 정책금융과 직접 투자를 통해 정부가 사업의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지원자를 넘어 주주 또는 파트너로 전략산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한미 간 전략적 투자를 둘러싼 협의가 예상보다 복잡하고 길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은 더 이상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관세, 규제, 정부 조달, 직접 투자 등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미국 중심의 생산기반을 재구축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생산하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과거의 산업 유치 정책과 다르다. 필요하면 관세로 생산비용의 차이를 조정하고, 정책금융으로 투자 위험을 낮추며, 정부 조달로 초기 수요를 창출한다. 전략산업에는 정부가 직접 지분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미국이 주요 산업 기반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동맹의 역할도 안보 파트너에서 생산과 기술, 자본을 함께 제공하는 산업 파트너로 확대되고 있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과 공급망을 다변화하려 노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국의 자본과 기술, 생산·운영 역량을 미국 산업기반 안으로 더 끌어들이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게 차이점이다.
필자는 이것을 '얼라이드 온쇼어링(allied onshoring)'이라 부른다. 미국 정부의 정책 용어라기보다 최근 미국의 정책 방향과 동맹국과의 산업 협력 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얼라이드 온쇼어링은 동맹국이 가진 기술과 자본, 생산·운영 역량을 미국의 산업 생태계와 결합해 미국 안에서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한화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사업과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 통합 제련소 사업은 이 전략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두 사업 모두 한국의 자본과 기술, 운영 능력으로 미국 산업기반을 강화하고 중국 의존도를 낮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전자가 최종 제품의 생산능력 확대를 목표로 한다면, 후자는 핵심광물 원료의 가공·제련 능력을 확보해 미국 내 전략광물 공급망 전반을 강화하고자 한다.
미국은 이렇게 '공장 유치'를 넘어 동맹국과 지속 가능한 '산업 기반 확충'을 겨냥하고 있다. 동맹국이 가진 기술과 자본, 공급망, 인력, 운영 경험을 미국의 산업 생태계와 결합해 미국 안에 지속 가능한 생산 능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두 사례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향후 한미 산업 협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방산, 항공우주, 반도체, 인공지능(AI), 자동차, 배터리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을 미국에 어디까지 제공할 것인지는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미국 내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기반 약화, 이른바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위험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의 산업 협력을 '기술 이전' 관점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한국이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산업적 기회를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의 기술과 미국의 자본, 시장, 정책 지원이 결합해 미국 현지에서 새로운 생산 능력을 구축하는 동시에, 한국 기업에도 안정적인 시장 접근과 사업 확장의 기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기업의 투자가 미국 내 장기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미국 정부도 제도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 산업협력은 기술이전보다 기술협력으로, 생산이전보다 공동생산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만 공동생산은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모델이라기보다, 조선·방산 등 전략산업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협력 방식이다. 핵심은 양국이 자본과 기술, 시장과 정책 수단을 결합해 전략산업의 생산능력을 함께 구축하고, 투자 위험과 시장의 기회를 공유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동맹의 모습은 안보에 필요한 산업기반까지 함께 구축하는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미래는 더 많은 것을 함께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함께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한국이 이 변화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협력한다면, 미국 산업 재건은 한국의 일방적 비용 부담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경제안보 파트너로 함께 산업기반을 확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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