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

안준용 기자

[데스크에서] ‘피터팬 아빠'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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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奇跡):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얼마나 엄격한 기준인가. 그래서 기사를 쓸 때도 단어에 대한 결벽증이 있었다. 필자의 기사에 데스크가 '기적'이라는 표현을 추가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뺀 적도 여러 번이다. 미담에 흔하게 붙는 진부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중증 자폐 아들을 27년간 키운 전경철씨를 만나고는 기적 외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전씨는 순수함을 간직한 것 같다며 아들을 '피터팬'이라고 불렀다. '피터팬 아빠'는 작년 4월 간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될 아들을 위해 전국 장애인 시설 1000여 곳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 정도 중증은 받기 어렵다'며 모두가 거절했다. 건장한 성인이 된 중증 자폐인이 24시간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으며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자포자기하던 그가 작년 11월부터 아들과의 일상을 인터넷에 연재한 것이 '기적의 씨앗'이 됐다. 입소문을 타고 사연이 알려져 지난 3월 한 방송에 소개되면서 시민 후원이 이어졌고, 전씨의 아들을 받겠다는 장애인 시설도 나타났다. 그의 글을 묶은 책 '안녕, 피터팬'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씨는 인터뷰 당시 '한때 너무 고통스러워 세상을 원망했고, 아들을 데리고 떠나려는 못된 생각까지 했다가 실행 직전에 접었다'고 했다. 중증 장애인의 돌발 행동을 복지 현장에서 '도전 행동'이라 부르는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랬던 그의 삶을 바꾼 건 평범한 이웃들의 응원이었다. 세상을 향한 원망은 감사로 바뀌었고, 그 마음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중증 자폐인들이 24시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 '피터팬들의 네버랜드' 건립이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전씨는 지난달 '피터팬 자폐인 복지재단'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위원장을 맡았다. 책 인세와 후원금 등 4억여 원의 설립 자금도 모였다. 그렇게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냈지만, 그는 재단 설립을 보지 못한 채 지난 5일 눈을 감았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무빈소로 치러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그때까지 마지막 꿈을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남들이 뭐라 해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첫걸음이 그와 같은 꿈을 꾸는 누군가의 다음 시도에 조금은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중증 장애인들이 방치되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 꼭 보호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많은 사람이 보내준 응원의 힘으로 그는 기대 여명을 넘기며 기적을 썼다. 피터팬 아빠의 여정은 끝났지만, 그가 못다 이룬 '홀로 남은 중증 장애인의 안전하고 존엄한 삶'이라는 과제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데스크에서] ‘피터팬 아빠'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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