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9일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 전쟁에 한국이 도와줄 것을 타진했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노 땡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렇게 단순하게 잘라서 거절할 일이 아니었다. 당장 참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떤 방식으로라도 '고려하겠다'는 긍정적 여운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 입에서 '단칼에 거절한' 듯한 표현이 나오도록 한 것은 외교적으로도 미숙한 방식이다.
우리가 이란 전쟁에 참여했을 때 국제적 입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전 세계가,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바람직하지 않은 트럼프의 만용'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나오는 전쟁에 우리가 뒤늦게 발을 넣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 평가와 궁지에 빠진 미국을 도와주는 일이 갖는 의미를 비교하고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어려움이고 역량이다. 어려울 때 미국을 돕는다는 것은 최소한 보은(報恩)의 뜻을 아는 민족의 덕목이다.
국익이라는 실리(實利) 면에서도 그렇다. 해외 파병 또는 참여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그것을 지렛대로 크게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베트남 파병으로 한국은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도약했다. 경제, 외교, 국방 면에서 산업화와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2003년 이라크 파병도 우리와 미국을 끈끈하게 묶어줬다. 좌파인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우리는 참여는 하되 피해는 최소화하는 지극히 경제적인 파병의 기록을 남겼다. 그때도 국내의 반대는 극심했다. 하지만 잃는 것과 얻는 것(또는 얻은 것)을 교량(較量)한 노무현의 결정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더불어 그의 긍정적 기록으로 남는다.
트럼프는 이번 이란전 참여 문제로 한국에 심기가 많이 틀어졌다. 그는 번번이 한국을 걸고넘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한국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북한 김정은을 들먹이며 한국을 대비(對比)하는 모양새다. 우리로서는 임기가 2년 남은 트럼프 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여운은 남는다.
국제 관계에서 그 '나라'와 그 나라 '집권자'를 다른 차원에 놓고 다뤄서는 안 된다. 미국 국민도 자기들은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국이 이란 전쟁에서 곤궁에 빠진 미국을 외면하는 것과 미국인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을 같은 크기로 계산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훗날 미국 또는 미국 국민은 한국이 이란전 때 미국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고 기억하지, '이(李)모 대통령이 노 땡큐 했다'로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는 미국이 대(對)이란전 때 70여 년 전 자신들이 도와줬던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한국이 거절했다고 기록하게 돼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80년간의 냉전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재편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3차 세계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는 수많은 국지전에 시달려 왔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레바논, 중국·인도, 이란 등지에서 분쟁이 이미 전쟁화됐고 대만, 한반도 등지에서 충돌의 기운이 크게 감돌고 있다. 벌써 터졌을 큰 전쟁이 핵의 가공할 위험 때문에 제동이 걸려 있을 뿐이다. 이 둑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전쟁이란 곧 편싸움이다. 세계는 그래서 새로이 편 짜기에 골몰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한 편으로 뭉치고 있고 미국 편은 나토 등지에서 분열하고 있다. 또 트럼프의 욕심에서 촉발된 제국주의적 땅 먹기도 가세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언제 한 덩어리, 즉 대전으로 폭발할지 모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서야 할 위치는 어디인가? 대한민국을 보전하기 위해 어느 쪽에 서야 할 것인가? 누구와 편 먹을 것인가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어설프게 자주, 중립·중간을 외치는 측은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휩쓸려 갈 수 있다. 미국을 등지면 안 된다. 한미 합동훈련 안 한다고 곧 무장 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곧 정신 해제로 이행된다는 것이 생존 세계의 법칙이다.
그런데 지금 좌파 정권은 오로지 해빙 무드로 가고 있다. 모르고 그러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전방 부대 총기에서 실탄을 빼고, 드론 띄웠다고 문책하고, 자주 국방에 심취해 훈련 안 해도 OK다. 느닷없이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한다느니, 우리 군사력이 세계 5위 운운하며 마치 강대국이나 된 양 자화자찬이다. 무엇보다 심각하고 두려운 것은 내란 단죄한답시고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우리 군(軍)을 반체제 세력쯤으로 낙인찍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쩌면 이 대통령의 '노 땡큐'가 지난 70여 년간 이어져 온 한미 관계에 중대하고 심각한 전환점을 몰고 오지 않을까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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