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

문태준 시인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37] 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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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 바다는 무얼 저리 찍어내는가 파도, 파도 밀어가며 저리 찍어내는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다도해 꽃밭에 피워낸 섬, 섬, 섬들 등대 불빛 서너 움큼, 파도 소리 예닐곱 장 몰려갔다가 흩어지는 어린 물고기떼까지 빠짐없이 찍어내는 바다의 쇄 밀물에 한 쇄, 썰물에 두 쇄 쉬지 않고 찍어내는데 판판이 살아 있는 개정판 찍어내는데. -정일근(1958~) ---------------- '쇄'는 한 권의 책을 출간한 횟수를 세는 단위이다. 시인은 바다가 끊임없이, 판판이 다른 책을 찍어낸다고 말한다. 그 책은 초판의 내용을 고치고 보완해서 매번 새롭게 발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다가 발간하는 것의 내용은 무엇일까. 높은 하늘과 이동하는 구름, 꽃 같은 섬, 등대 불빛, 파도 소리, 물고기떼 등등이 그것이다. 등사기를 밀어 무언가를 찍어내듯이 파도를 밀어서 책을 발행한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바다의 수면 위와 아래의 것, 낮과 밤의 시간, 보는 것과 듣는 것, 생명의 정교하고 촘촘한 움직임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다. 정일근 시인의 다른 시 '바다'에는 히말라야 산골에서 눈이 맑은 소년을 만나서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시인은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묻는 소년에게/ 거울에 비춰 네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렴/ 그것이 바다의 깊이와 같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네'라고 썼다. 왜냐하면, 소년의 눈동자에는 에베레스트산이 다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바다와 같은 시심을 보았다.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37] 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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